사람은 누구나 이야기를 갖습니다. 브랜드도 저마다 색깔을 지닙니다. 매뉴팩트는 커피를 하는 사람, 공간을 만든 사람, 브랜드를 만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업을 이루기까지 걸어온 궤적을 살펴봅니다. 과거의 경험이 모여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들여다봅니다.나아가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들어 봅니다. 사람을 이해하면 브랜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세요. Vol.04Monthly Interview< 그라더스 grds — 박유진 대표 > 1.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그라더스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안녕하세요. 그라더스 대표 박유진입니다. 저는 호주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호주와 한국 사이에 있는 경계인이자 1.5세대 이민자입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호주로 이민을 갔고 초등학생 때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을 왔습니다. 저는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여러 해를 보내다가 중학생 때 저만 호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게 호주는 한국보다 더 익숙한 나라이기 때문에 호주로 가서 공부해 보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권유를 쉽게 수락할 수 있었죠. 가족은 한국에 남고 홀로 호주 기숙사 학교로 보내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부모님 댁에 머물며 한국에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라더스의 모회사인 아버지 회사는 기능성 신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고 로고 작업을 도와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 내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내 브랜드를 만든다면 로고를 이렇게 만들겠다, 브랜드를 이렇게 키우겠다는 어쩌면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브랜드를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모양을 갖추게 되었고 조금씩 브랜드를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러다 말겠거니 생각하셨던 부친은 꽤 진지하게 회사를 만드는 저를 가까이서 보시고는 투자를 결심하셨고 그라더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호주로 돌아가는 계획을 접고 한국에 머물게 된 계기가 되었죠.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은 재밌으나 키우는 건 어려워 사업이 정상화되는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술 작품에 자아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랜드도 자아가 필요합니다. 브랜드를 만들어 자아를 형성시켰지만, 브랜드에서 자아를 키우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2.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 디자인 공부가 비지니스를 할 때 어떤 도움이 되던가요? 호주에 홀로 남아 가족의 돌봄 없이 중고등학교를 보내면서 결핍이라는 걸 처음 경험해 본 것 같습니다. 가족의 결핍과 보살핌의 결핍은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과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다소 굵직한 질문을 어려서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공상하며 내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의 답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호주 고등학교는 과목을 선택해 공부할 수 있는데 저는 유독 미술과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행히 관심을 가진 만큼 두각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대학교에서도 시각예술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나온 대학은 순수예술이 강한 학교로 유명합니다. 이곳은 작품을 만들 때 기술적인 스킬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단 작품을 만든 배경과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같은 생각을 담는 그릇을 키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교입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작품에 대한 압축된 생각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지금 제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작품을 만들고 의미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법은 비즈니스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제품을 만들 때도 의미를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브랜드를 만든 이유, 제품을 만든 이유는 분명해야 하고 그것을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비지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훌륭한 마케터라고 생각하는데 예술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잘 알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도 좋은 제품을 사람들에게 팔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이 좋은 제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디자인은 생각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크고 작은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울림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회사가 위기를 겪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땐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제품을 만들었고 하고 싶은 대로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작품을 만들듯 제품을 만들었지만, 그 울림은 내 안에서만 맴돌 뿐 곧 사그라졌습니다. 그때 깨달은 게 작품이든 제품이든 울림이 없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과 내 안에 울림을 고객에게 연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품을 사용자 중심으로 바꾸고 나와 고객을 연결하니 그때부터 회사는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3. 그라더스는 라틴어로 걸음.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이름을 짓는 데까지 5개월 정도 고민한 것 같네요. 여러 이름이 후보군으로 올라왔지만, 최종적으로 그라더스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과거를 살다 간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는 걷기를 좋아하는 작가가 많았는데요. 그들은 걷는 행위를 통해 사색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걸음이 내게 중요한 이유는 저 역시도 걸음으로써 생각을 배설하고 아이디어를 착상하기 때문입니다. 걸음은 삶에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고 걸음의 시작인 신발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신발을 제작해 삶을 오래도록 잘 걸어 나갈 수 있도록 하면 그것이 곧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거라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죠. 4. 신발을 만들기 이전에 발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 보이는데요. 걸음걸이는 사람마다 다른데 이상적인 걸음걸이라는 게 있을까요? 신발은 용도에 맞게 신는 게 중요합니다. 짧은 거리를 걷는 거리는 슬리퍼나 내 발에 편한 신발이라면 상관없이 신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할 때처럼 만 보 이상 걸어야 하는 거리라면 신발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오래 걷기 위해선 뒤축이라고 하는 발뒤꿈치를 잘 잡아주는 신발을 골라야 합니다. 그리고 바닥이 평평한 신발이 좋습니다. 건강한 걸음은 발뒤축부터 지면에 닿기 시작해서 중앙, 그리고 앞축으로 이어지는 걸음걸이가 좋습니다. 발 전체를 쓰는 걸음이 좋습니다. 신발의 뒤축이 발뒤꿈치를 잡아주어야 걸었을 때 발이 좌우로 흔들리는 걸 방지합니다. 신발 사이즈는 발 길이에 맞추기보단 발 볼에 맞춰야 합니다. 오래 걷게 되면 발은 자연히 붓기 마련이므로 신발에 여유 공간도 염두에 둬야 하죠. 내 보행이 잘못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는데 신발 밑창을 봤을 때 뒤꿈치 중앙과 내측이 닳아 있으면 신체 어딘가가 틀어져 있다는 방증입니다. 외측 45도가 닳아 있다면 정상적으로 보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5. 서서 일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신발이 있다면요? 그라더스가 만든 신발 중에 첼시 02가 있는데 이 신발은 작업화입니다. 서서 일하는 사람에게 신발은 무척 중요한 도구이죠. 발이 피로하면 신체가 피로해지기 때문에 내 발에 맞는 편한 신발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첼시 02가 많은 사랑을 받는 데는 오래 신어도 발이 편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발 굽이 5cm 정도로 높은 편인데 여름날 지면의 뜨거운 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높게 제작했습니다. 작업화가 다소 무거운 편인데, 신발이 무거우면 발에 피로가 쌓이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발이 무거워도 내 발에 맞는 신발은 보행할 때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은 가벼워도 피로를 느끼기 쉽죠. 6. 신발을 제외하고, 책과 글쓰기, 사진 그리고 위스키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요즘은 기타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기타와 관련한 글과 영상을 검색하다 보면 디자인으로 엮을만한 소스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는 방식이 대게 그런 식인데, 저는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일하는 방식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길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를 틀어 놓고 기타를 친다거나 책을 읽다가 디자인 스케치를 하는 식으로 일을 합니다. 언뜻 보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다소 산만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저는 디자이너이고 디자인적인 소스를 찾아내는 건 디자이너에겐 숙명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디자이너는 일과 여가가 양립될 수 없고 디자인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적인 소스는 디자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삶에 녹아져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거나 커피를 마실 때, 혹은 기타를 공부하다가도 디자인을 만나게 되는 거죠. 그 순간 떠오른 그림을 주변에 놓아둔 스케치북에 잡아두고는 언제 쓰일지 모르는 소스를 꾸준히 쌓아가는 방식으로 일을 합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출근하면 행정적인 업무들, 보고받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에 집중하고 디자인적인 업무는 대게 집에서 이뤄지고 있네요. 가끔 직원과 회의하다가 스케치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는데 그건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되도록 자제하려 노력합니다. 내게 맞는 신발을 찾는 게 중요하듯 내게 맞는 일하는 방식을 찾는 것도 생산성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산발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늘 좋은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하는 방식을 루틴하게 만들어 그것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이따금 날카롭게 솟아오르는 생각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낚아채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그라더스를 끌어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든 제품의 많은 부분이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요. 7. 홈페이지에 독특한 컨텐츠가 눈에 띕니다. 그라더스 페이퍼와 3hrs와 같은 컨텐츠를 기획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콘텐츠도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과 카테고리에서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의 슬로건이 '영감을 주는 걸음'인데 이게 시각적으로 보여야 하죠. 그라더스 신발을 신고 걸으면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 것들을 표현해 보자는 데서 콘텐츠가 시작되었습니다. 좋은 제품은 기본적으로 품질이 좋지만, 훌륭한 제품은 그 제품을 선택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죠. 제품과 서비스와 브랜딩이 삼박자를 이뤄 조화를 이루길 바랍니다. 저희를 통해 각자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아내고 그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 좋겠습니다. 3hrs 콘텐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루 3시간 동안 해보자는 취지로 만든 콘텐츠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내게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저도 과거엔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게 중요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나에게 쓰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심 있는 것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좋은 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듯 3hrs를 컨텐츠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죠. 그라더스 페이퍼와 3hrs 컨텐츠는 그라더스가 만든 좋은 제품을 통해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8. 대표님은 제품을 만들지만 결국 사람과 삶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삶을 지향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고 가식적인 것을 안 좋아합니다. 몸에 좋은 걸 찾기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저는 스스로를 객관화하길 잘하고 자신을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자신을 잘 아는 개인으로 이뤄진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믿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관계에 있어서 결핍을 겪은 사람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으로 이 일을 택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라더스를 통해 내가 하는 것들이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면서 만난 디자인이 나를 바꿨듯 내가 만든 디자인이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길 원합니다. 기타를 치면 선율이 내게 울림을 주듯 내가 만든 제품이 사람들에게 울림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9. 매뉴팩트커피를 알 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매뉴팩트 커피 중 콜드브루 카멜리아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매뉴팩트는 2016년에 퀸마마마켓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연희동에서 식사를 자주 하곤 하는데 연희동에 갈 때면 매뉴팩트에 종종 들러 커피를 마시죠. 요즘도 플랫화이트를 맛있게 마시고 있습니다. 커피에 딱히 취향이 있다기보단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마십니다. 산미가 있는 커피부터 쓴맛이 있는 커피까지 에스프레소든 브루잉이든 골고루 마십니다. 어느 날인가 아내가 매뉴팩트에서 사 온 콜드브루를 마셔봤는데 커피 맛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편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칵테일을 주조해서 마시길 좋아하다 보니 커피도 원액에 물을 조절해 희석해서 마실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콜드브루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라더스 매장에 방문하시는 손님께도 콜드브루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카멜리아는 균형이 잘 잡혀있고 대중적인 맛이라 가까이 두고 마시고 있습니다. < 그라더스 grds >서울 마포구 동교로 52, 2층(월 ‒ 금) 12pm — 8pm(토 ‒ 일) 11:30am — 8pmgrds.com